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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우아한 쇠퇴

  • 장경덕 
  • 입력 : 2018.04.10 17:17:19   수정 :2018.04.10 17: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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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촌철살인의 글을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이 대목이 압권이다. `닭의 일생 동안 매일 먹이를 주던 농부가 결국 그 닭의 목을 비튼다.`

닭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격변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닭에게 지난날의 경험은 치명적인 위기를 예견하는 데 되레 방해가 될 뿐이다. 이 닭은 훗날 글쟁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글쟁이들은 주가가 끝없이 오르기만 할 걸로 믿는 투자자나 자신의 권좌가 영원할 걸로 여기는 독재자를 추수감사절을 앞둔 칠면조에 빗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할 거라는 믿음이나 경제는 으레 성장할 거라는 생각 역시 러셀의 닭처럼 짧은 경험에만 의존한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1960년대생인 나는 반세기 동안 줄곧 성장하는 경제만 보고 살았다. 한국 경제는 정치적 혼란기인 1980년(-1.7%)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5.5%)에만 뒷걸음질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에도 미약하나마 성장했다.

개발연대 이후 성장률 그래프는 번지점프 코드의 궤적을 닮았다. 1970년대 10%에 달했던 연평균 성장률은 10년마다 2%포인트씩 떨어졌다. 성장률이 추락할 때마다 탄력 있는 V자형 반등이 이뤄졌지만 그 고점은 자꾸만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번지 코드가 끝내 탄력을 잃고 늘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갑자기 멈출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도 좋을까. 누구도 그렇게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경제는 노동과 자본 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높일 때 성장한다. 먼저 노동 투입 측면을 보면 장기적으로 역성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인구가 3000만명이던 1970년 한 해에만 100만명이 태어났다. 작년에는 전체 인구가 5100만명이 넘는데도 출생아는 35만명에 그쳤다.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0만명대로 정점에 이른 후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40대 후반이 되면 생산인구는 20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1700만명으로 쪼그라든다.

경제가 성숙 단계에 이른 지금, 자본 투입 역시 예전만큼 급속히 늘어나기 어렵다. 토지와 건물, 기계설비를 비롯한 넓은 의미의 자본은 이미 한 해 국내총생산의 8배에 이를 만큼 많이 쌓여 있다. 실질금리가 1% 안팎으로 떨어진 걸 보더라도 고속 성장 시대의 공격적인 자본투자 수요는 사라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생산성 향상 속도도 줄곧 떨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7%대였고 이 중 3분의 1이 생산성 향상에 따른 것이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잠재성장률이 3% 안팎으로, 생산성 향상의 성장기여도는 1%대로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은 모두 2030년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조금만 삐끗하면 10여 년 후 성장률이 0%대나 그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도 고속 성장 시대의 신화를 잊지 못한 채 성장률이 3%에 못 미치면 경제가 나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경악할 이야기다.

이런 사정은 1990년대 중반 일본과 비슷한 면이 많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까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했지만 그 후 급격히 활력을 잃었다. 그러자 일본 사람들은 `우아한 쇠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생산인구 감소로 경제 외형은 줄어들더라도 1인당 소득이 늘어 개개인이 행복하게 잘살게 되면 무엇이 문제냐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었다.

한국 경제 역시 인구가 줄어들면서 구조적 저성장이나 역성장이 현실로 닥치면 일종의 체념과 합리화의 논리로 우아한 쇠퇴가 회자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아한 쇠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줄어드는 파이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는 아귀다툼이 벌어지지 않을까. 쇠퇴는 우아하지 않을 것이다. 비통하고 참담할 뿐이다.


러셀의 닭은 평온한 일상이 갑자기 끝날 수 있다는 친구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그의 모든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갑작스러운 위기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세기 동안 성장하는 경제에서 살았던 우리는 성장을 멈춘 경제를 상상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이 꼭 필요한 때가 아닐까.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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