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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매경데스크] 샴페인 잔과 1000억 벤처

  • 전병득 
  • 입력 : 2018.01.04 17:34:55   수정 :2018.01.04 17: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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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20년 전 맥킨지 한국 보고서 얘기를 많이 한다. 1997년판 보고서는 한국 경제 구조를 `샴페인 잔`에 비유했다. 2012년에는 한국 경제 현실을 `온탕 속 개구리`로 묘사했다. 김 위원장은 2개의 리포트에 들어가 있는 함축적 표현이 지금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한탄한다.
중소·중견기업이 부실한 한국 경제를 샴페인 잔에 비유한 보고서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런 비유적 진단이 20년 전에 나왔지만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됐다"고 평가한다. 경제학자답게 원청업체와 납품업체의 영업이익률 격차를 해외 업체와 비교한 후 하도급 대책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과거 맥킨지 보고서를 우리 기억 속에서 소환한 김 위원장의 지적은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세계적인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독일 보쉬 같은 중소기업 하나 없는 이유는 뭘까.

사회주의 국가에서 1999년에 창업한 알리바바는 지금 `2020년 꿈의 시총 1조달러`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20년간 벤처 육성을 부르짖은 우리는 기업가치 10억달러의 유니콘 기업조차 변변히 없는 이유는 뭘까.

연말에 발표된 중소기업 호감도는 여전히 낙제점(51점)이며 특히 20·30대 청년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배종태 카이스트 교수는 `좋은 일자리 네 가지 조건`을 얘기한다. 적절한 보상(임금), 직업 위상(기업 인지도), 직무 만족도, 성장 가능성. 네 가지 조건에 딱 맞는 중소벤처기업이 몇 곳이나 될까. 사람이 가지 않으니 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매일경제가 신년기획 `1000억 벤처 1000개 만들자`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한국 경제의 `삼페인 잔` 프레임을 깰 수 있는 대안으로 1000억 벤처 가능성에 주목했다. 작년 우리 벤처기업 수는 3만3000개. 이 중 한 해 1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벤처는 513곳에 불과하다. 벤처 역사가 20년이나 되지만 연매출을 1조원 이상 올리는 벤처는 네이버, 성우하이텍 등 고작 4곳뿐이다.

1000억 벤처는 대기업 못지않은 임금과 복지환경을 갖고 있어 좋은 일자리의 네 가지 조건에 가장 근접한다. 당연히 취업경쟁률도 세다. 창업기업은 평균 종사자 수가 3.2명에 불과하지만 1000억 벤처는 100배가 넘는 385명에 달한다. 513곳 매출을 다 합치면 107조원. 1000억 벤처가 지금의 두 배인 1000개로 늘어나면 우리 경제는 삼성전자를 하나 더 보유하게 된다. 우리의 일자리 해법과 벤처 정책 방향도 여기서 찾으면 어떨까.

우리 창업 생태계는 `다생 다사` 구조다. 신설 법인이 한 해 10만개에 육박하는데 기업 수명은 OECD 17개 회원국 중 꼴찌다. 기업이 3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고작 38%다. 단순히 창업만 많이 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창업한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기업의 성장`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케일 업 UK` `스케일 업 아메리카` 등의 패러다임이다. 작년 11월 세계 기업가정신 주간에 방한한 대니얼 아이젠버그 교수는 "더 많은 신생 기업을 탄생시킬 게 아니라 더 많은 성장 기업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11년간 기업가정신을 강의한 노교수는 "`혁신의 아이콘` 애플과 스타벅스도 스타트업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확장한 사례"라며 "한국도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기업이 `스케일 업`하는 데 맞춘다면 다른 문제는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해 2조원이 넘는 돈이 쏟아지는 벤처시장에 앞으로 혁신펀드가 조성되면 10조원의 돈이 풀린다. 창업으로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이 1000억 벤처가 될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 1000억 벤처가 많아질수록 창업가의 목표도 커진다. 1000억 벤처가 5000억 벤처로, 다시 1조 벤처로 커가는 꿈. 꿈이 클수록 일자리는 더 많이 생기고 나라 경제의 허리는 굵어질 것이다.

[전병득 중소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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