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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매경데스크] 다주택자, 용서받지 못할 자를 위한 변명

  • 이근우 
  • 입력 : 2018.09.17 00:07:01   수정 :2018.09.17 1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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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들은 요즈음 동네북 신세다. 일 안 하고 놀고 먹는 불로소득자란 비난에서 집값 폭등 주범, 투기꾼, 세금 두들겨 맞아도 싼 자 등 온갖 욕을 들어야 한다. 정권 출범 초 `다주택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급기야 다주택자 투기 세력들을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기존 임대사업 등록 혜택을 줄이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9·13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 서울 집값만 유독 뛰는 게 집주인 탐욕 때문이라는 발상은 너무 단순하다.
집값이 치솟으면 집주인은 당연히 과거보다 더 비싼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더 오를 것 같으면 더 사고 싶은 것 또한 당연하다. 경제학자 월터 블록이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에서 말했듯이 집주인들은 인간의 기본 본성인 `가능한 한 최고의 조건으로 협상하려는 욕구`에 충실할 뿐이다.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높은 가격을 바라는 욕구`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닌 `높은 가격을 청구할 수 있는 능력`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배가 많이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공공임대 비축분이 6%대에 불과하고 기업형 임대가 형성되지 못한 국내 주택시장에서 전체 수요 중 40%에 달하는 전·월세 등 임대 물량을 다주택자들이 공급하고 있다. 세금과 규제로 집값을 일시 때려잡을 수야 있겠지만, 그다음에 닥칠 전·월세 등 임대난은 어떻게 감당할 셈인가. 그리고 최근 서울 집값 급등이 투기꾼 탓이고, 정부의 규제 부작용이 두려운 실수요자는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여름 강북 한 옥탑방에 거처하며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학 교수가 쓴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를 읽었다. 이 책에선 대도시 도심 집값 급등, 그리고 이외 지역의 쇠퇴는 글로벌 트렌드이며 이는 젊은 인재들과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소수의 대도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도시가 제조업 기반에서 금융·서비스·IT 등 4차 산업혁명 기반의 첨단산업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핵심부 집값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르는 반면 그 외 지역은 별 볼일 없거나 오히려 하락하면서 양극화와 갈등이 심해지는 도시 위기가 근본 원인이란 것이다. 당초 원심력으로 작동할 것 같았던 스마트폰, 광역 급행 교통망과 같은 통신과 교통수단 발달이 구심력으로 작동하면서 젊은 인재들은 물론 은퇴 후 낙향했던 노인들도 대도시로 향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선박·조선 등 제조업에 기반을 둔 울산·거제·구미·창원·군산·인천은 쇠락해 가는 반면 서울은 여전히 정치·금융·IT와 첨단산업 중심지다.

도시 집중화에 따른 새집 수요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도심 용적률과 용도 제한 등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 낡은 교통망을 고쳐 도심 접근성을 좋게 해야 한다. 그게 글로벌 트렌드다. 만약 경직된 규제로 공급을 막는다면 집값은 장기적으로 더 뛸 수밖에 없다. 용적률을 풀어 땅값이 치솟으면 그에 따른 개발이익을 환수해 도심 역세권에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부자들 집값이 오른 만큼 질 좋은 공공임대가 더 생기도록 하는 것, 그리고 주택 규제를 허물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임대주택에 살도록 해 고통을 완화하는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을 서둘러야 한다.

수도권 인프라 부족으로 세계 최장 통근시간과 교통 혼잡으로 고통받고 난개발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그린벨트를 더 풀면 주변부만 황폐해진다.
수도권 신도시를 더 지을 게 아니라 대도시 도심을 고밀도로 개발하고, 도심과 도시 내 소외 지역, 기존 신도시와 이어지는 교통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콤팩트 시티가 근본 대책이다. 플로리다 교수도 결국 도시 위기를 막으려면 사회기반시설에 집중 투자하고 도심에 임대 주택을 확충하는 한편 도시 확산은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옥탑방 살이 전후로 플로리다 교수 조언대로 용산·여의도 통개발과 교통망 확충을 통한 강북 재개발 청사진을 내놨다가 `집값 급등의 원흉`이라는 집중 비난을 받고 물러섰다. 유감이다.

[이근우 모바일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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