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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매경데스크] 혐오의 칼춤을 멈춰라

  • 김주영 
  • 입력 : 2018.07.12 17:42:15   수정 :2018.07.12 17: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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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윤간을 당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단순 폭행 혐의만 적용받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처구니없게도 그녀가 도발했다는 이유다. 그녀의 직업이 웨이트리스인 데다 당시 술에 취했고 마약까지 소지했다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어느 여자가 스스로 도발해서 윤간을 당하겠나. 영화 `피고인`(The Accused, 1988) 얘기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지독히 불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강간 당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룬 이 영화는 `가해자에게 관대한 반면 피해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려는 사회가 진짜 피고인`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30년 전 영화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소환된 것은 지난 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었다. 군 간부의 성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군 내 성범죄 피해자 상담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송 장관은 "여성들이 행동거지라든가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발언에는 30년 전 영화에서처럼 여성들의 행동에 성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이 주도하는 5G 시대에 들어섰다지만 우리 사회의 마초적 인식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여전히 건재하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의 `젠더`(사회적 의미의 성) 감수성은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문화에 무뎌진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른바 `넷페미(net-feminist)들`은 `미투(Me Too)`와 낙태죄, 소라넷 폐지 등 각종 이슈를 공론화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며느리의 역할 비교 프로그램이 방송되는가 하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가 등장하는 등 최근 페미니즘적 흐름은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일부 사이트들의 `남혐(남성혐오)` `여혐(여성혐오)`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우려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극우프레임과 뒤섞이면서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페미니즘 집회는 급진적, 극단적인 구호로 집회의 취지를 훼손시켰다. `경찰 성비를 여성 9, 남성 1로 하자`라든가 `문재앙, 재기하라`며 대통령을 비난하고, 심지어 한 남성혐오 온라인 커뮤니티는 성체(聖體)를 훼손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 커뮤니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때문에 탄핵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한데, 페미니즘은 `반(反)남성주의가 아니라 반(反)성차별주의`다. 우리 사회에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남녀 불평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단과 독선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할 뿐이다. 양성평등의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선 사회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사(NASA)의 달 착륙 프로젝트에 기여한 3명 흑인 여성의 실화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흑인이라는 것에 한 번, 여성이라는 것에 또 한 번 차별 당한 이들의 현실은 수십 년 전이기는 하지만, 선진국 미국의 모습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암담하고 후진적이다. 800m나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서도 배제된다. 그런데 이들은 차별에 감정적으로 대항하는 대신 재판을 하고 능력을 발휘해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역사를 바꾸는 것은 난세의 영웅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감춰진 영웅들 덕분이다. 그리고 여성의 성공은 곧 남성, 인류의 성공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미국 흑인 여성운동의 대모 벨 훅스는 `여성 해방은 남성 해방의 반대쪽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을 가두고 있는 가부장제와 위계적 남성 우월주의를 해체함으로써 남성도 해방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도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진화하길 바란다.

[김주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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