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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매경데스크] 출산에 벌을 주는 사회

  • 김인수 
  • 입력 : 2018.06.28 17:18:57   수정 :2018.06.28 17: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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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신청하라는 안내문을 받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정부가 출산 지원에 열심"이라고 말했더니, 최근 결혼한 30대 초반 여성 지인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요즘 사교육비가 얼마인데, 매달 10만원 준다고 아이를 낳을 거라고 기대하면 오산"이라고 했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라는 게 `푼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식"이라며 "그런 식의 출산 인센티브는 효과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출산 장려를 위한 정부 지원을 인센티브로 받아들인다면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는 인센티브의 속성 탓이다. 인센티브를 제안받으면 우리 두뇌는 `그게 금전적으로 이득이냐 손해냐`를 따지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는 말이지. 그러면 아이를 낳는 게 이익일까 손해일까`를 따지게 된다. 지인 말대로 매달 10만원의 아동수당이나, 몇백만 원의 출산장려금은 육아 비용에 비하면 푼돈이다. `오! 역시 육아 비용은 너무 커. 아이를 못 낳겠어`라는 식의 판단에 이르게 된다. 지인이 딱 그랬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지인에게 "아동수당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에 그 노고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아동수당을 인센티브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내게 마치 훈장처럼 명예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지인은 내게 "순진한 소리 하지 마라"고 했다. 출산 후 대부분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건 훈장이나 명예가 아닌 `벌`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했는데 왜 그렇게 많은 벌을 받아야 하는 거죠?"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그의 말이 백번 옳다. 정부의 출산장려책을 빼고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출산의 가치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조직되고 운용되고 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가려고 하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회사 눈치를 봐야 한다.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면 `쉬다 돌아온 사람` 취급을 받는다. 밤중에 몇 차례나 잠을 깨서 울어대는 아이를 돌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생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회사에서는 한직으로 발령을 낸다. 육아휴직을 두 번 쓰면 여성의 커리어는 망가진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심하면 회사까지 그만둬야 한다. 직장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경력 단절`이 발생하는 것이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세 가지 기둥이라고 일컫는 일·사랑·놀이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사회적 벌이 또 있을까 싶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남자조차 육아휴직을 가지 않으면 오히려 직장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한다. 자녀를 돌보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곳은 출산과 육아의 가치를 반영해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되는 곳이다. 스웨덴 출산율(2016년)은 1.85명으로 10년 전과 같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높다. 반면 지난해 한국 출산율은 1.05명으로 10년 전 1.25명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엄마`를 뜻하는 `맘`에 `벌레`를 뜻하는 `충`을 결합한 말이다. 모성을 이보다 더 심하게 비하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미혼 젊은이들이 그 같은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쓰는 장면을 봤을 때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이는 한국에서 출산과 육아의 가치가 얼마나 폄훼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진정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육아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직장부터 변해야 한다. 일과 육아가 양립하는 방식으로 조직되고 운영돼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이미 그렇게 한다. 업무가 많은 직원들은 오후 5시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일한다.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고 회의를 일찍 끝내자는 말도 아무런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허언과 돈만으로는 출산율을 못 높인다.

[김인수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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