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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매경데스크] 중국 발꿈치도 못따라가는 한국벤처 생태계

  • 이근우
  • 입력 : 2018.01.07 17:17:26   수정 :2018.01.07 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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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선보일 삼성 갤럭시S9과 애플의 차세대 아이폰에 장착될 것으로 알려진 신기술 중 하나가 스마트폰 1개에 심(SIM·가입자 식별 모듈)을 두 개 꽂는 듀얼심 기능이다. 전화기 한 대로 업무용 전화와 개인용 전화를 구분해 사용할 수 있고, 해외 로밍을 할 때도 본국 전화와 현지 전화를 번갈아 쓸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한 통신사는 음성, 다른 통신사는 데이터, 또는 알뜰폰 등 소비자 입맛대로 유리한 요금제를 골라 쓸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혁신적인 듀얼심 기능은 그러나 세계 양대 휴대폰 회사의 고뇌 찬 `혁신`과 숨 가쁜 `경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듀얼심 휴대폰의 최초 기원은 `구우치(GUUCCI)` 지갑, `노스페이스(North Faith)` 재킷, `심성(SIMSUNG)` 전화기 등 `짝퉁`의 본산인 중국 선전 뒷골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며칠 가다가 멈추는 5000원짜리 롤렉스 시계, 펜촉이 금방 망가지는 3000원짜리 몽블랑 만년필을 사기 위해 들르던 불법 복제품 천국, 중국 선전이 어느새 오리지널을 베끼는 수준을 뛰어넘는 복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위조지폐 감별기가 달린 삼성 전화기, 심카드 슬롯이 두 개 탑재된 LG 전화기가 2010년대 초반 중국 선전에서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내수공업 규모로 복제품을 찍어내던 선전의 공장들이 특허와 규제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단순 모방을 넘어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낸 것이다.

중국 선전은 이제 통신회사 화웨이, 스마트폰 제조업체 ZTE, 인터넷 거인 텐센트 같은 대형 첨단 기술 기업들의 본산이 됐다. 중국의 외딴 어촌이 불과 30년 만에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고 이제는 세계 양대 기업 생태계로 발돋움하고 있다.

중국산 싸구려 짝퉁을 뜻하는 속어 `산자이(山寨)`란 말은 본래 산적들의 본거지란 뜻이다. 하지만 중국 `수호지`에서 양산박 산적떼가 세를 키워 영웅호걸로 둔갑해 세상을 호령하듯 중국 선전의 기세도 이젠 실리콘밸리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불법 복제나 하던 중국 산적떼가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세계를 주름잡는 혁신 기업가들로 변신하는 동안 한국은 뭘 했을까. 한국 정부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지난 20년간 벤처 육성책을 쏟아냈다.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벤처 1만개 육성, 창조기업센터, 혁신기업 생태계 조성 등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벤처 육성책을 내놓았지만 5년마다 처음부터 다 다시였다. 강시 벤처들 돈이나 퍼주고 국민 눈속임용 쇼나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년 동안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한 벤처, 특히 제조업체는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과거엔 국제 제재에도 자국 불법 복제품을 보호한 중국 당국이 벤처 생태계를 키웠다면 이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IT 공룡, 이른바 BAT가 중국 벤처기업들을 키우고 있다. 이들 세 개 회사의 벤처 투자액만 한 해 130억달러, 우리 돈으로 14조원에 달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 상위 50개 스타트업 가운데 BAT 직접 자회사는 3개, BAT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15개, 전직 BAT 출신이 창업한 회사가 7개다. 중국에서 잘나가는 벤처 스타트업 절반을 BAT가 키운 셈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삼성 LG 현대차 등 세계를 호령하던 대기업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나 벤처 투자는커녕 출자제한 등 규제의 사슬에 칭칭 묶여 꼼짝을 못한다. 사업 확장과 신산업에 나서도록 등 떠밀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법인세를 올리고, 투자 유인용 세 혜택을 없애고, 규제를 신설해 기업가정신을 꺾고 있다. 한마디로 공룡은 족쇄를 채우고 새로운 벤처들을 양산해 국내에서 혁신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MIT 미디어랩 소장 조이 이토는 자신의 저서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에서 이렇게 말한다. 700만년 전에는 공룡으로 사는 게 아주 좋은 일이었다. 두꺼운 피부에 강한 이빨을 가진 냉혈동물은 오래 살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하지만 고생물학자에 따르면 겨우 몇 시간 만에 그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됐다. 그래서 공룡은 죽었다. 빙하기가 닥쳐오는데 동굴에서 웅크리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해보라고 애원해도 시원찮은 판국이다. 정말 이러다 다 함께 훅 간다.

[이근우 모바일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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