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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양만춘 리더십'을 보고 싶다

  • 정혁훈 
  • 입력 : 2018.10.02 00:05:01   수정 :2018.10.02 13: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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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잠시 스쳤던 안시성 전투를 스크린으로 다시 접하곤 진한 여운이 남았다. 영화적 상상력에 첨단 촬영 기술까지 더해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당군과 맞붙어 싸우는 전투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뭐가 내내 싸움만 하다 끝나냐"는 아내(로맨틱 코미디를 가장 좋아함)의 푸념에 혹시 논쟁으로 비화(?)될까 싶어 미소로 답했지만, 속으로는 "다음엔 어떻게 싸울까 기대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투 신(scene)보다 더 뇌리에 남는 건 사실 안시성주 양만춘이었다.
영화로 나오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했던 양만춘을 다시 보게 된 건 배우 조인성의 재해석으로 새로 태어난 캐릭터의 매력 때문도 아니었고, 사정거리 밖에 있던 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정확히 맞힌 그의 신궁(神弓) 능력 때문도 아니었다. 1373년 전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한 그의 리더십이 가장 큰 이유였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과 사상 최악의 취업난, 도무지 줄어들 줄 모르는 사교육비 등 생활고에 억눌리는 현실 속에서 `사이다` 같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양만춘 리더십`은 하나의 로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 역사의 대표적 군사 전략가인 당태종 이세민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낸 양만춘 리더십의 핵심은 현장에 대한 완벽한 이해였다. 핵심 참모와 함께 성 내외부를 시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상이었음은 당연했다. 치매에 걸린 노파가 끌던 수레가 진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그를 도와 아들에게 인계해주는 모습이나 아이를 낳은 집을 심야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가 술을 선물하는 그의 진솔한 모습은 현장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지금의 정책당국자들과 뚜렷하게 대비됐다.

더욱 반짝인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그의 용인술이었다. 환도수장(검부대장) 풍과 부월수장(도끼부대장) 활보는 성격과 재능이 판이하게 달라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라이벌이었지만 양만춘은 둘의 장점을 살려 심복으로 쓰면서 전투에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심지어 안시성으로 숨어든 연개소문의 부하가 자객임을 알고도 그를 얻기 위해 단도(短刀)에 목을 맡기는 위험까지 무릅쓸 정도로 양만춘은 사람의 재능을 아꼈다. 잠시라도 상대편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능력과 재능은 아예 따져보지도 않고 배척하는 현 정권의 인사 원칙과는 너무도 달랐다.

앞일을 헤아릴 줄 아는 식견과 치밀한 전략·전술도 빼놓을 수 없다. 당군이 성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을 미리 내다보고, 성문 안쪽으로 대형 울타리를 쳐 당군을 앞뒤로 가둬놓고 공격해 초장에 적군의 기를 꺾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보다 앞서 사방이 뚫린 대평원에서 당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15만 대군 중 14만을 잃은 연개소문의 무모함과 대비됐다.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행되고, 어떤 부작용을 내는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평소 소신대로만 정책을 폈다가 뒤늦게 수습하느라 애쓰는 지금의 당국자들이 새겨봐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아이디어에 대한 과감한 실행력은 양만춘 리더십의 또 다른 진수였다.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는 데서 힌트를 얻어 당군이 쌓아올린 토산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놀이에서 묘수를 찾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생각에만 그칠 수 있었던 것을 실천으로 옮긴 그의 결단력이 더욱 빛났다. 혁신성장을 이끌 아이디어를 모아놓고도 이곳저곳 기득권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무너진 토산 위에서 무기마저 다 떨어진 양만춘이 당군과 최후 결전을 앞두고 다진 각오는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현실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우리 정책당국자들이 되새겨볼 만하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순간이다. 모든 게 이걸로 결판난다. 여길 지켜낼 수 있느냐에 따라 안시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안시성을 위해 우리의 몸을 부수자." 대한민국을 지켜줄 리더십을 보고 싶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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