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매경포럼

[매경포럼] 54조원 세금을 걷지 않았더라면

  • 노원명 
  • 입력 : 2018.09.27 00:07:01   수정 :2018.09.27 17:39:2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60323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문재인정부 출범 후 투입된 일자리 예산을 누구는 54조원이라 하고 누구는 42조원이라 한다. 워낙 천문학적 금액이라 추계하기도 어렵다. 언론은 이 돈이 도대체 어디로 갔길래 일자리 성적이 이 모양이냐고 따진다. 54조원은 5400만원 연봉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인데 지난 1년간 늘어난 일자리는 고작 3000명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법은 그다지 `경제학적`이지는 않다. 한국은 매년 최소 30만개의 일자리는 늘어야 현상 유지가 되는 나라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인력이 그 정도 된다. 3000개 증가에 그쳤다는 얘기는 평상시에 비해 29만7000개 줄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54조원 들여서 고작 3000개 늘었다`고 하면 팩트는 팩트이되 본질을 교묘히 왜곡한다. 알게 모르게 정부를 엄청 봐주는 거다. `54조원을 써서 일자리 30만개를 날렸다`고 해야 실상에 근접한 표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의 각도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며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정부 프레임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산을 써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프레임 말이다. 이 프레임은 경제학에서 주류 의견이 못 된다. 미국의 경제 저널리스트 헨리 해즐릿은 1946년에 `경제학 1교시`란 책을 썼다. 지금도 자유주의 경제학 입문서로 널리 읽히는 책이다. 해즐릿은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예산으로 54조원을 쓸 것을 70년 전에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쓰고 있다. 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을 비판한 것이다. "공공 일자리 프로젝트를 위해 정부는 세금을 거둔다…다리 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많아지고 자동차, 텔레비전 기술자, 의류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줄어들었다."

무슨 말인가. 정부는 세금을 써서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고 실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세금 부담으로 인해 그 사업이 없었다면 유지됐을 민간 일자리들이 사라진다.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정부가 투하한 54조원은 소방직, 보건직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렸다. 정부는 "그나마 공공부문이 있었기에 일자리 감소를 이 정도로 막았다"고 자찬한다. 그들은 54조원 투입이 앗아간 민간부문 투자 여력과 고용은 셈에 넣지 않는다.

나는 해즐릿의 관점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54조원은 기업과 개인이 낸 세금이다. 이 세금을 걷지 않았다면 투자와 소비에 쓰였을 돈이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게 몇 개나 될지 계산하는 것은 경제학자들 몫이다. 일자리 참사가 발생한 원인으로 흔히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꼽는다. 도소매·숙박음식점 등 영세 자영업 관련 업종에서 취업자 수가 급감하고 있으므로 이건 눈에 보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금으로 날아간 일자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게 더 클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와 법인세 인상 효과가 각각 얼마의 고용 감소를 가져왔는지 누가 좀 계산해 줬으면 좋겠다. 확실한 것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늘린 일자리가 민간의 고용 감소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설령 상쇄할 수 있다고 해도 큰 문제가 있다. 왜 멀쩡한 민간 일자리를 돈 들여서 공무원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그게 합리적인 경제행위인가.

이에 대해선 애덤 스미스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스미스는 민간부문 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정부부문은 비생산적 노동으로 보았다. 군인이나 공무원이 여기에 들어간다. 사회적 부의 증대에 기여하는 것은 군인으로 복무하는 청년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스미스가 볼 때 정부의 낭비야말로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암적 요소다. 공무원이 늘어나는 국가는 정부의 낭비가 일어나는 국가다. 스미스는 말한다. "큰 국가가 개인의 낭비로 가난해지는 법은 없지만 정부의 낭비와 잘못된 행위에 의해 가난해지는 경우는 있다."

경제정책에 정답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경제팀 능력이다. 다만 세금을 더 걷어서 일자리를 늘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법인세 인하였다.
안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러 점잖은 말로는 `연목구어`라 하고 속된 표현으로는 `삽질`이라고 한다. 해즐릿은 이렇게 말한다. "관료들이 게으름뱅이라면 당신은 운이 좋다. (불행히도) 오늘날 그들은 열심히 생산을 방해하고 붕괴시키는 정력적인 개혁가들이 되어가고 있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경포럼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Gold 투자 할 때인가?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