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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이 '영혼 있는 공무원'에게 답을 주라

  • 최경선 
  • 입력 : 2018.09.20 00:07:01   수정 :2018.11.13 14: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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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정문 앞에서 지난 13일 현직 경찰 간부가 정복을 입고서 3시간 동안 1인 시위를 벌였다. 홍성환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 경감이 그 주인공이다. 경찰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6년 차 경찰이다. 그는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이라는 팻말을 들고 자신의 휴무일에 시위를 벌였다.
바로 그날 문화체육관광부는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발표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장 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12명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문화예술계는 발끈했다. 지난 6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26명을 수사 의뢰하고 105명을 징계하라고 권고했는데 왜 공무원 징계 범위가 좁아졌느냐는 반발이다. `솜방망이 셀프 면책`이라는 비난과 함께 도종환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공무원들은 "상급자 지시에 따라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영혼 없이 일한 것도 죄"라고 몰아붙였다. 심지어 부역자라는 수식어까지 갖다붙였다. 이처럼 `영혼 없는 공무원`이 수난을 당한 사례는 문재인정부에서 한두 번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화계 블랙리스트, 노동정책, 자원 개발 등에 간여했던 수많은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기도 하고 좌천당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문재인정부는 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공무원들이 항명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에 나섰다. 올해 3월 국무회의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곧바로 국회에 제출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복종의무다. 현 정부는 여기에 `다만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제 문재인정부는 `영혼 있는 공무원`과 마주하고 있다. 홍성환 경감은 "경찰 수뇌부가 손해배상 소송을 포기함으로써 막대한 혈세를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들은 물품을 분실하면 경고를 받거나 징계를 당하는데 국민 혈세를 낭비한 경찰 수뇌부는 어떤 징계를 받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의 비판은 2015년 세월호 추모집회와 관련된다. 그날 시위대는 경찰 버스에 불을 지르고 무전기를 파손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고 경찰 4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경찰은 집회 주최 측에 7000만여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이 "서로 금전적인 배상을 청구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끼친 피해에 상호 유감을 표명하라"는 강제 조정을 권하자 경찰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용했고 홍 경감은 반발한 것이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2015년 민중총궐기투쟁, 2009년 쌍용차 점거 시위와 관련해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라고 지난달 경찰에 권고했다. 이미 법원이 1심과 2심 재판에서 쌍용차 점거 시위와 관련해 "11억여 원을 경찰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는데도 그 돈을 포기하라고 권했다.

경찰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철회하면 그 돈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홍 경감은 "경찰이 불법·폭력 시위대에 가만히 맞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홍 경감의 울분 토로에 경찰 내부 게시판에서는 응원 댓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경찰청 수뇌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홍 경감 말에 맞장구를 치려고 하니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와 그 지지층의 반발이 걱정될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 국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경찰에 쌍용차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철회하라고 계속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혼 있는 공무원`을 강조해온 현 정부에서 홍 경감을 징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법과 타협해선 안 된다"는 경찰 내부 목소리도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입은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형세가 길어지면 민갑룡 경찰청장이 세상에서 가장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낙인찍힐 판이다. 민 청장의 소신을 알고 싶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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