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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매경포럼] 시장의 보복

  • 김명수 
  • 입력 : 2018.09.06 00:07:01   수정 :2018.09.06 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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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건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절대적 빈곤 시절엔 잘 참았지만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이런 현실을 참지 못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이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1% 부자들을 혼내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국민 정서를 그대로 활용한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이번 정부 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강남 소재 주택 보유자들을 겨눈 강남 집값 대책이 대표적이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를 올리고 강남 재건축을 제한했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핵심 요지에서 공급이 없어질 것으로 예측되자 `똘똘한 집 한 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강남 집값은 폭등했다. 다른 지역 주택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1%를 겨눈 정책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더 키웠다.

시장을 무시한 결과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 억제정책은 먹히지 않고 오히려 공급도 늘리지 않는다는 신호와 겹치면서 집값은 폭등할 수밖에 없었다. 공급이 탄력적인 곳이 아닌 부동산시장에서 이런 신호는 치명적이다.

1% 부자들을 겨눈 행보는 재벌개혁이란 이름으로도 추진 중이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업들의 피나는 일자리 창출 노력은 무시한 채 기업 옥죄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 성실한 기업들마저 사업할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속전속결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것도 기업인들 사기를 떨어뜨린 대표적인 조치이다. 주 52시간제를 어기면 기업 대표이사는 언제든지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자 기업인들은 더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6·25전쟁 때에도 사업을 일궜던 불굴의 한국적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는 분위기이다.

요즘 10대 그룹이 잇따라 발표하는 투자나 채용계획만 보면 우리 경제는 장밋빛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투자계획을 모아놓고 구상 단계인 향후 사업까지 탈탈 털어 발표한 수치이다. 최근 발표한 각 그룹의 구상이 실천되려면 최소 3년은 걸린다. 계획 구체화에 1년, 인허가에 1년, 관련 설비 구매에 1년씩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려면 이번 정권이 거의 다 지나간다는 얘기다. 기업 총수가 있는 기업들은 약속을 지키는 흉내라도 낼 수 있겠지만 주인 없는 민영화 공기업은 CEO가 임기를 마치면 없었던 일로 그친다.

오히려 허상만 안겨준 채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다. 지난 2분기 국민소득 통계나 최근 고용참사가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기업들은 대기업 옥죄기 일변도로 정책이 나오고 그토록 희망하는 노동개혁 의지는 보이지 않자 일자리 창출 노력은 뒷전이다. 국내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국GM은 이미 사업성 없는 군산사업장을 폐쇄했다.

대기업들도 신규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혁신적인 투자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당수가 규제 탓이다. 대기업 혁신 수단 중 하나는 사내벤처 육성이나 외부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이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은 사내벤처를 키운 뒤 그 사내벤처를 독립시킬 뿐 혁신을 수혈하기를 꺼린다. 국내 스타트업 M&A도 여의치 않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눈총을 의식해야 하고 벤처기업 기술 탈취 같은 논란에 휩싸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순수한 벤처캐피털이 아닌 벤처캐피털 지주사를 둬야 한다는 신설 규정도 혁신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다. 구글은 매년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개최해 전 세계 우수 스타트업에서 혁신을 빨아들인다. 해당 스타트업 인수나 해당 사업 진출을 통해서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의 특징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은 반응한다. 때로는 보복하기도 한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항의도 대표적인 시장의 복수 사례다. 선의로 추진하는 정책이더라도 그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책도 함께 추진하는 게 옳다. 패키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집값 안정이 목표라면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를 병행했어야 한다. 그나마 요즘 공급 확대 논의가 활발해 다행이다.
기업들도 자발적 개혁에 나서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들의 책임경영(RBC)을 자율적으로 선도하고 있고 취임 20주년을 맞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인류 공존과 번영을 위한 사회적 가치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제 노동계도 자발적으로 노동개혁에 동참할 때다. 그래야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혁신적 기업가정신이 되살아난다.

[김명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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