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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국민연금, 위선적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 이진우 
  • 입력 : 2018.07.09 17:13:22   수정 :2018.07.09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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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 논란의 등장인물은 3명이다. 유력한 후보였다가 결국 낙마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공모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곽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공모 절차 진행 중에 곽 전 대표에게 연락을 한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민망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는데, 등장인물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옳고 그름은 이미 뚜렷해졌다고 본다.
안타까운 점은 사안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다 보니 중요한 논점들이 덮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쏙 빠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 관련된 위선적(僞善的) 제도 설계를 바로잡는 것이 해답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착한 체만 하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가는 문제 해결이 요원할뿐더러 언제든 낭패스러운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딱 세 가지만 짚고자 한다.

첫째는 위선적인 직무 설계다. 국민은퇴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CIO는 고도의 이재 감각과 운용 경험이 필요한 자리다. 그런데 제도는 이 자리에 대해 황금을 돌로 보는 수준의 청빈함을 상정(想定)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 CIO는 인기가 없는 자리다. 엄격한 자격 요건에 비해 연봉(3억원 수준)은 박하고, 임기도 2년(1년 연임 가능)으로 짧다. 게다가 퇴임 후 3년간 유관 업종 재취업이 금지된다. 더욱 황당한 악조건은 까딱 잘못하면 감옥 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청빈했어야 하고, 재임 중에는 당연히 청빈해야 하며, 퇴임 후에는 청빈할 수밖에 없는 괴상한 자리를 만들어놨다.

자리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과도한 족쇄를 없애야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다. 이게 안 되니까 자꾸 무리수를 두게 된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장 실장과 김 이사장의 속내에는 곽 전 대표를 꽉 붙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와닿았기에 곽 전 대표도 본인의 선임을 확신했던 것은 아닐까.

둘째는 위선적인 검증 시스템이다. 국민연금 CIO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자체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곽 전 대표는 서류·면접 심사에서 역대급 점수를 받았음에도 청와대 최종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국민연금 CIO의 최종 검증을 왜 청와대에서 해야 하나. 병역 등 객관적 결격 사유는 추천위원회 서류 심사에서 거르는 게 자연스럽다. 전문적인 청와대 검증 기능이 필요하다면 서면·면접 심사 후(後)가 아니라 전(前)에 활용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그래야 국민연금 운용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거다.

마지막 셋째는 위선적 조직 설계다. "기금운용본부장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현 체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 부족, 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에 따른 인력 이탈 방지와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 지난 5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획재정부 기금평가단이 국민연금에 내린 판정이다. 키워드는 `근본적인 방안 마련`이다. 지금 이대론 안 된다는 얘기다. 사실 시장에선 해법에 대한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돼 있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떼어내 경쟁력을 키우고, 본부 위치도 업무에 적합한 곳으로 옮겨 효율성을 높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해법이지만 실행이 안 되는 이유는 착한 척하는 정치 때문이다.

사실 국민연금 CIO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상당수 골칫거리는 위선적 제도에서 비롯된다. 정치인들이 앞장서 도덕적 원리주의를 온갖 제도에 심어놓다 보니 이 모양이다.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편법과 범죄자를 양산한다.


국민연금 정상화의 단초는 위선을 버리고 현실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이번 논란의 등장인물 3인 가운데 곽 전 대표는 화두를 던지고 한국을 떠났다. 위선적 제도의 혁파는 나머지 두 사람 몫이다.

[이진우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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