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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공정경제 프레임의 이면

  • 정혁훈 
  • 입력 : 2018.07.02 17:49:01   수정 :2018.07.02 17: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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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A회장은 최근 본사 건물 경비원 두 명을 내보냈다. 최저임금 인상분이 반영된 새 경비지출계획서를 총무부장으로부터 보고받은 직후였다. 경비원들은 "급여를 예전 그대로 받아도 좋으니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범법자가 되는데 어떡하냐"는 게 A회장의 항변이었다.
그는 경비원 둘 고용에 들어가는 비용의 절반도 안되는 돈으로 보안 업체와 계약했다. 정말 안타깝지만 이게 지금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근로자들에게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들은 새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자 좋은 세상 만났다며 내심 큰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중기·자영업자들이 자체 조정에 나서면서 일자리 시장이 위축됐고, 그 충격을 이들이 흡수하고 있다. 여기에 이달부터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면서 용케 살아남았다 해도 급여 삭감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돈 없는 여유`보다 `돈의 여유`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겐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근로자들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대기업 오너들도 요즘 풀이 많이 죽었다. `최순실 게이트`에 휩쓸린 대가로 줄줄이 검찰과 법원,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면서 큰 상처를 받았다. 지금도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오너가 적지 않다. 오너들 분위기가 이 지경이니 회사 분위기도 좋을 리 없다.

기업이 잘되려면 유망한 신사업에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를 단행하려면 리스크를 감내하는 오너의 결단이 필수적이다. 실적을 매년 평가받는 전문경영인이 5년, 10년을 내다보고 모험적 투자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권력 눈치만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대기업 오너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실정법을 어긴 오너를 단죄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나머지 오너들까지 숨죽인 채 지내는 걸 보기가 그렇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새 정부 들어 기운 충만해진 집단이 있으니 대기업 노조, 그리고 중소기업 오너다. 대기업 노조의 기가 살아난 건 현 정부의 친노조 행보 덕이다. 기득권 노조의 무소불위 행태는 이전 정부에도 있었지만 그때는 견제 세력이라도 있었다. 대기업 오너들도 힘이 있었고, 정부도 노조의 무리한 집단행동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오너들 힘이 빠진 데다 정부도 노조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어 견제가 불가능하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장에도 노조 출신들이 곳곳에 포진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중기 근로자들은 `조직`이 없어 찍소리 못하고 있지만 대기업 노조는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사측과 협상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고 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아래로 전가돼 `무(無)노조` 근로자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중소기업 오너들은 권력의 감시가 대기업에 집중된 틈을 타고 잇속을 챙기고 있다. 정부가 무리한 납품 단가 인하도 막아주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통해 대기업 진출까지 차단해주면서 사업 리스크가 훨씬 줄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재무·회계 시스템 투명도가 떨어지다 보니 오너가 마음만 먹으면 전횡을 일삼기도 대기업보다 수월하다. `공정경제`라는 프레임 뒤에 숨어 달라진 세상을 즐기는 중기 오너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멋진 취임사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와 노조, 중소기업 오너와 근로자가 겪고 있는 지금의 차별적 현실이 평등·공정·정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리 라이딩(무임승차)`하는 집단은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신념을 실험하기엔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모든 목표가 일자리 쪽으로 향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일자리 없이는 정부가 바라는 공정경제도 허망하기 때문이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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