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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3가지 환상에 빠진 한국

  • 이진우 
  • 입력 : 2018.06.11 17:25:40   수정 :2018.06.11 19: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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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선언한 날이다. 반세기 동안의 악연을 끊었다는 정치적 의미가 컸지만 경제적 기대감도 대단했다. 미국 턱밑에 자리 잡은 쿠바는 천혜의 관광지인 데다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다. 사업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이 아바나로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흘렀다. 아직까지 쿠바 경제가 `천지개벽`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쿠바 국민은 생필품 배급을 받으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7월 미국을 비롯한 주요 6개국과 핵협상 타결을 선언했던 이란의 운명도 엇비슷하다. `이란 특수(特需)`는 어림도 없었다. 지난달 미국이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경제 제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혹자는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행정부가 `뒤통수`를 쳤다고 지적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인의 합의가 경제적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돈은 이중삼중의 투자 안전장치를 확인한 후에야 움직이게 마련인 것이다.

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미 국내 증시에선 북한 개발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금세라도 대북 투자가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평화가 정착되고 본격적인 북한 경제 개발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북한 특수가 단박에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이는 곧 확인될 사실이다. 국제 제재를 푸는 것도, 국제기구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도, 대규모 남북 경협을 실행하는 것도 금세 이뤄질 일이 아니다. 복잡한 절차와 장황한 준비가 필요하다. 쿠바·이란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베트남도 과거에 그랬다. 한국 입장에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접근해도 기회를 잡을까 말까다.

한국이 빠져 있는 다른 환상들도 슬슬 주워담을 때가 됐다. 소득주도성장론이 대표적이다. `서민 주머니를 채워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스토리는 정치적으로 아름답고, 정서적으로 감동적이다. 선거를 앞둔 마당에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확연해지고 있다.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피해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부터 통계로 뒷받침되기 시작했다. 13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문재인정부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환상에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하고자 하는 환상은 `한국 기업은 강하다`는 믿음이다. 역설적으로 기업 경쟁력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업들을 이렇게 막 다루지는 못할 것이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지배구조 개편, 일감 몰아주기 단속,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규제 폭탄을 전방위적으로 밀어붙인다. 이 과정에서 기업 쪽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위험천만한 환상이다.

반도체를 빼놓은 한국 경제는 `속 빈 강정`이다. 수출 주력 제품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도 걱정이지만 반도체 이후 성장산업이 묘연한 게 더 큰 문제다. 14일 새벽에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 소식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 돈이 넘쳐나는 시대가 저물었다는 명백한 신호다. 조만간 한국 기업의 실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가 시작되면 생산량이 24% 줄어듭니다. 영업이익은 3분의 1 토막이 납니다. 앞으로 금리와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이익은 더 줄겠죠. 수출도 예전 같지 않지만 곧바로 사업을 접지는 않을 겁니다. 두 가지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적자가 날 때까지 버티다가 문을 닫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겁니다.
혹시 그 전에 북한이 열리면 사정이 달라질까요? 문제는 수백 명에 달하는 국내 직원들입니다. 답이 안 나옵니다."

한 중견기업인의 하소연이다. 이게 거짓말 같나. 환상에서 벗어나 엄혹한 현실을 맞닥뜨려야 할 시점이 머지않았다.

[이진우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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