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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대기업의 혁신성장은 가능한가

  • 장박원 
  • 입력 : 2018.05.28 17:11:10   수정 :2018.05.28 17: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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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쟁 상대는 구글이다." 몇 년 전 삼성전자 고위 임원이 이 말을 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허 소송까지 벌이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애플도, 미국 반도체 강자인 마이크론도 아닌 구글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구글은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기업이라 하드웨어에 강점이 있는 삼성과 부딪칠 일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삼성이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목격하며 그 임원이 무슨 의미로 이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결국 혁신을 추구하는 일류 기업들은 한곳에서 만나게 되고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구글은 하드웨어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삼성은 소프트웨어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그렇다면 삼성은 구글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선점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고, 스마트폰도 애플에 비해 한발 늦었지만 빠른 추격으로 지금은 점유율 기준으로 세계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삼성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구글은 삼성을 압도한다. 특히 혁신 역량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삼성이 못해서가 아니다. 구글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구글은 혁신을 최고 가치로 놓고 중장기 전략부터 말단 직원의 근무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 시스템이 조화롭게 움직인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구글 인사 담당으로 근무했던 라즐로 복이 쓴 `업무 규칙(Work Rules)`은 구글 혁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직원들을 창업자와 같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창업자 눈으로 세상을 보고 회사 가치를 전파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과 혁신을 이끌도록 한다. 일하고 연구하는 사무실을 `캠퍼스`라고 이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글은 강력하고 독보적인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구글의 미션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조직화해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험한다.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배운 것이 있으면 보상한다.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면 그들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성공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말고 실패에 대해선 보상하라." 구글이 천문학적인 돈을 혁신기술에 쏟아붓는 배경에는 이런 기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도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신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등 혁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혁신에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말단 직원까지 기업 가치와 미션을 공유하고 자발적인 혁신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상명하달 방식의 관료적인 조직 문화도 남아 있다. 이런 상태에서 구글과 경쟁을 벌이면 결과는 뻔하다. 한국의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며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실천하는 곳은 별로 없다. 기업의 조직 문화를 확 바꿔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는 최근 `한국 기업의 기업 문화와 조직 건강 진단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청바지 입은 꼰대.` 아무리 복장을 자율화하고 직급 호칭을 없앴다고 해도 생각과 행태는 그대로인 `무늬만 혁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한국 대기업들의 현주소다.

우리 경제의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이 잘해야 하지만 대기업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자원과 기술력, 인재를 보유한 대기업이 혁신성장을 이끌면 파급력이 클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가 특별히 지원하지 않아도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며 혁신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대기업 스스로 낡은 관행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대기업을 보는 정부 시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규제 대상에서 혁신성장을 이끌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 삼성과 구글이 아직 맞붙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대기업과 정부는 한 팀으로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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