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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라이프 폴리틱스

  • 윤경호 
  • 입력 : 2018.05.23 17:35:30   수정 :2018.05.23 17: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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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난 몇 시간 후인 23일 아침 TV엔 그 모습만 되풀이됐다.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역에선 달랐다. 지방선거 출마자들 때문이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명함이 금세 한 주먹 가득 찼다.
구의원·시의원·구청장 후보가 줄지어 서 있던 날도 있다. 잘하면 교육감과 시장 후보까지 한번에 다 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일곱 번 도장을 찍는다는데 나머지 둘은 누구지?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아냈다. 시의원 비례대표와 구의원 비례대표다. 투표도 1·2차에 걸쳐 한다. 1차엔 시장, 교육감, 구청장을 찍는다. 2차로 용지를 다시 받아 구의원, 시의원, 비례대표를 뽑는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비례대표 투표를 몰랐다니 겸연쩍었다.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남북-한미-미·북정상회담이 이어지고 있다. 6·13 지방선거도 목전에 있다. 남북 관계 호전과 지방선거 가운데 어느 것이 내 생활에 영향을 더 미칠까. 집권 여당은 문 대통령의 정책이 남북 관계를 잘 풀어냈다며 자랑한다. 야당은 문정부 1년을 표로 평가하자며 날을 세운다. 따져보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일은 정치 선거가 아니라 생활 선거다. 동네 초입 무너져내린 언덕을 빨리 보수해달라는 요청이나 마을버스 노선을 내 집 앞도 지나게 해달라는 민원을 잘 들어줄 구의원이나 구청장을 뽑는 선거다. 주민 의견을 대변하고 동네 행정이 바뀔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일꾼을 택하는 기회다. 생활정치를 구현하는 마당이다.

정당마다 공천을 둘러싼 싸움에 뒷말이 무성하지만 귀를 열게 만드는 얘기도 들린다. 한 지역 당협위원회가 전통시장 상인들의 한목소리 지지를 받은 이를 구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생활정치 그 자체다.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는 라이프 폴리틱스(생활정치)를 강조했다. 정치는 어느 시대든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국민의 생활에 관련된 정책을 제시해 대결을 펼쳐야 한다. 이번에 뽑은 선량을 통해 내 동네 쓰레기봉투 값이 바뀔 수 있다. 재활용 폐기물 처리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아이들 학교급식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지방선거를 통해 생활과 정치를 분리시킬 수 있다.

일곱 자리에 평균 3명씩만 출마해도 21종류의 공보물이 우편으로 올 거다. 산더미 자료를 다 보기야 어려울 거다. 그래도 정당만 보고 한 줄로 내리찍는 줄투표는 삼가자. 재미 삼아 찍기 하듯 원칙 없는 지그재그식도 금물이다. 수학능력시험 보듯 꼼꼼하게 살핀 뒤 결정하자.

따로 진지하게 지적해야 할 대목이지만 현행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정당공천제는 잘못된 제도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물심양면으로 후원과 복종을 하지 않으면 출마할 엄두도 못 내는 게 현실이다. 어느 시의원은 재임 기간 내내 지역구 국회의원의 몸종처럼 따라다니는 굴욕을 감내했다고 토로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기초의원 정당 공천부터라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중앙당의 손아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기초의원에게 정치와 생활의 경계를 허물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매번 50%대 초반에 머문 역대 투표율을 보건대 일곱 번째인 이번 선거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더 떨어질까 싶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게임이라며 지지하는 쪽이든 견제하는 쪽이든 관심을 안 보일 개연성이 높아 보여서다. 닷새 전인 8일부터 이틀간 진행하는 사전투표나 13일 당일 투표 때 꼭 신성한 기본권을 행사하시길 권한다. 선량들은 표를 보고 움직인다. 표를 주지 않으면 다음부터 우리 동네를 위한 정책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의사 표시에 다름 아니다.

선거에 관해 다룰 때마다 인용하는 명구를 또 들먹이며 마무리한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설파한 몇 마디다. 정치와 선거를 외면하면 받는 벌은 자신보다 저급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선거에서 투표는 좋아하는 이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싫은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도 한다. 새삼스럽지만 두 명구를 다시 한번 새겨보시길.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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