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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남북대화 두려움 잊어도 좋은가

  • 최경선 
  • 입력 : 2018.01.09 17:39:24   수정 :2018.01.09 19: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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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시작된 한국전쟁 휴전회담은 협상에서의 기싸움과 심리전을 잘 보여준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일깨워 준다.

미국은 당초 원산항에 정박 중인 중립국 선박에서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지만 결국은 공산군 점령지역인 개성에서 회담을 시작한다. 스탈린으로부터 "휴전을 더 바라는 쪽은 미국이니 서두를 필요 없다"는 지령을 받은 공산군 측이 너무도 느긋했기 때문이다.
기선을 제압당한 유엔군 대표는 협상장에 들어설 때에도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공산군 측은 커다란 백기를 매단 지프차에 유엔군 대표를 태워 개성으로 안내했다. 전쟁 중 안전 조치라는 명분으로 양측이 합의한 사안이지만 마치 유엔군이 항복하러 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미군에게서 공산군이 빼앗은 그 지프차에는 총알 자국과 핏자국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회담장에 도착해서도 수모는 이어졌다. 공산군 측은 유엔군 대표단보다 10㎝ 정도 높은 의자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유엔군 측이 "빨리 의자를 바꾸라"고 소리 질렀을 때에는 이미 공산군 측 기자들이 사진을 모두 찍은 뒤였다. 서두를수록 함정에 빠질 위험도 커진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례다.

남북 고위급 대표가 9일 판문점에 마주 앉았다. 날씨와 개인적 일화까지 언급해가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과거와 같은 유치한 기싸움은 없다.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 응원단, 참관단을 보내는 문제도 순조롭게 합의에 이르렀다.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다시 열자는 제안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살벌하던 긴장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듯한 기대를 갖게 하지만 김칫국을 마실 때는 아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평창에 대표단을 보낼 수 있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말도 했다. 저 핵단추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어떤 분은 몇 달 전 TV 토론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에 대한 과도한 공포 때문에 남북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가상의 공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 공포에 짓눌리면 합리적인 대화가 어려우니 경계 대상이다.

그러나 남북 대화에 대한 기대가 만발하는 이때에 더 걱정스러운 건 그와 반대되는 심리 상태다. 공포를 느껴야 할 상대를 앞에 두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일이다.

스웨덴 경찰은 45년 전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강도 2명이 스톡홀름에서 은행 직원 4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6일 동안 대치했는데 놀라운 것은 인질들이 구출된 이후 보인 행동이다. 엉뚱하게도 인질범을 옹호하고 심지어 경찰에게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불리는 황당한 현상이다. 강한 억압 상태에서는 사소한 호의도 크게 받아들이면서 이런 증후군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측 대화 제의를 번번이 거부하던 북한이 덜컥 대화를 수락했다. 이제 평창올림픽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부르며 함께 웃고 박수 칠 것이다. 어제의 북한과 오늘의 북한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도발 본능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들은 전쟁 도발국이고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저지른 위험한 상대다. 북한 핵무기가 방어용이나 체제 유지용이라고 두둔하는 말도 우리 측에서 간혹 흘러나온다. 북한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압박 중인 국제사회가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의심할 수도 있을 만한 시각이다.

핵무기를 들고 큰소리를 치지만 점점 조급해지는 쪽은 김정은이다.
유엔 제재 결의에 따라 중국이 지난해 말 북한에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다.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나갔던 노동자들은 하나둘 쫓겨 들어오고 있고 식당도 문을 닫고 있다. 그 압박에 다급해진 북한이 손짓 한번 보냈다고 환호성을 울린다면 본질을 망각하는 일이다. 인권을 억누르고 핵개발로 긴장을 증폭시켜온 북한의 본질을 직시해야만 앞으로의 남북 대화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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