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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울프 트랩 야외공연장

  • 윤경호 
  • 입력 : 2018.07.12 17:42:21   수정 :2018.07.12 21: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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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특파원으로 일하며 미국 워싱턴DC 부근에서 살았던 때 여름이면 즐겨 찾던 곳이 있다. 버지니아주 비엔나에 있는 울프 트랩이다. 국립공원이지만 도심 주택가 옆에 있는 울창한 숲이다. 울프 트랩을 찾는 이유는 숲속에 자리 잡은 멋진 야외공연장 때문이었다.
어떤 날엔 오후 6시 30분부터, 다른 날엔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공연은 재즈에서 오페라와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어슴푸레 떨어지는 여름 해와 석양 후 깃드는 아련한 어둠을 그곳에서는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다. 차양으로 덮인 무대 앞 비싼 좌석보다는 멀리 떨어져도 매트를 깔고 누울 수 있는 값싼 풀밭 자리를 우리 가족은 더 선호했다. 와인 한 병에 치즈와 크래커 몇 개를 담은 피크닉박스를 옆에 끼면 모네의 그림 풀밭 위의 오찬을 그대로 재연하는 듯해 뿌듯했다. 와인 한 모금 머금고 편한 자세로 듣는 오케스트라 선율은 더 감미로웠다.

지난달 23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공원 내 발트뷔네 공연장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고별 지휘를 전하는 기사는 울프 트랩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발트뷔네는 매년 여름 열리는 야외공연의 백미인데 래틀은 이곳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정했다. 고별 공연이라 더 관대했다지만 맥주를 파는 이가 관객 사이를 돌아다니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도록 했다. 막판엔 지휘자 래틀이 맥주잔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유로움의 극치를 보여줬다.

주말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함께 보기 위해 만난 선배 일행은 살짝 불콰한 얼굴로 객석에 들어왔다. 광장 옆 분수대에서 준비해온 와인 한 잔씩을 마셨다고 한다. 여름밤 공연이니 긴장을 풀고 싶었는데 구내 음식점이나 매점에서는 와인이나 맥주 한잔 팔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사실 예술의전당 옆 국립국악당에도 야외공연장이 있다. 서울 남산이나 북촌에 있는 작은 규모의 야외공연장도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피크닉박스 들고 가서 발 뻗고 즐기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여름밤 축제로 손꼽힐 야외공연장 하나쯤 키워보면 어떨까. 한국판 울프 트랩에서 와인 한잔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상상만 해도 설렌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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